타타라 잉굴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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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타타라 잉굴다이(만주어: ᡨᠠᡨᠠᡵᠠ ᡳᠩᡤᡡᠯᡩᠠᡳ, Tatara Inggūldai, 1596년 ~ 1648년)는 청나라 초기의 군인이자 외교관, 정치가입니다. 만주족 타타라(Tatara, 他塔喇) 씨족 출신으로, 정백기(正白旗)에 속했습니다. 조선에서는 용골대(龍骨大)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.
생애:
- 잉굴다이의 가문은 대대로 현재의 랴오닝성 푸순시 동남쪽에서 거주했습니다. 그의 조부가 누르하치에게 귀순하면서 정백기에 예속되었습니다.
- 청년 시절부터 용맹함을 떨쳐 니루이 어전(niru-i ejen, 牛祿 額眞)으로 승진했으며,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따라 명나라와의 전투, 몽골 원정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습니다.
- 1621년에는 랴오양, 묵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유격(遊擊)으로 승진하고, 이후 참장(參將)까지 올랐으나 같은 해 12월 사고로 비어(備禦)로 강등되었습니다.
-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조선과의 협상을 담당했습니다. 특히 병자호란 이후 삼전도에서 인조의 삼배구고두례(三拜九叩頭禮)를 관장하기도 했습니다.
- 병자호란 이후에도 마부대(馬夫大)와 함께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전담했습니다.
- 외교뿐만 아니라 재정과 행정에도 능하여 홍타이지의 신임을 얻어 호부승정(戶部承政)으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.
- 1648년 2월 24일에 병으로 사망했습니다.
조선과의 관계:
- 잉굴다이는 여러 차례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양국 간의 협상, 무역, 포로 송환 등의 문제를 처리했습니다.
- 조선에서는 그를 용골대(龍骨大)라고 불렀으며, 병자호란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심술궂은 사람을 비유하는 '용골대질'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.
- 그러나 실제 잉굴다이는 조선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보였으며,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 등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, 김상헌과 최명길을 심문할 때도 이치에 맞는 말에는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.
기타:
- '타타라'는 고대 일본의 제철 방식 또는 그 시설을 의미하는 일본어 단어이기도 합니다.
타타라 잉굴다이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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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 | |
만주어 | ᡨᠠᡨᠠᡵᠠ ᡳᠩᡤᡡᠯᡩᠠᡳ (tatara inggūldai) |
중국어 간체 | 他塔喇 英俄尔岱 (Tātàlǎ Yīngé'ěrdài) |
한국어 | 용골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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